국내 의학 학회 연합체인 대한의학회는 논문 이중게재 문제를 더 이상 간과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11일 공식적으로 표명했다.
대한의학회는 "학술지 게재 논문의 저작권은 저자가 아니라 학술지 발행인에게 있으므로 논문 이중게재는 먼저 출판된 학술지의 저작권을 침해한 행위이며 국내 의학계의 신뢰를 위축시킬 수 있는 학문윤리 위반행위"라고 밝혔다.
동시에 국내 의학계에 국제의학학술지편집인위원회의 생의학 학술지에 투고하는 원고의 통일 양식을 준수할 것과 각 학술지가 지속적으로 이중게재 여부를 검증하고, 이런 논문이 발견됐을 경우 신속히 논문 철회를 공고할 것을 권고했다.
이중 게재란 연구 목적, 연구 대상, 연구 방법이 같은 논문을 다른 학술지에 중복 게재하거나 여러 편의 논문으로 발간하는 것을 의미한다. 연구 결과 조작 등의 연구 윤리와 달리 이미 발표한 연구 결과를 새로운 내용인 양 다시 발표하고, 먼저 게재된 학술지의 저작권을 침해하는 출판 윤리의 문제다.
이미 발표한 연구 결과를 다른 언어나 다른 독자를 대상으로 다시 출판하기 원하는 저자는 이미 논문을 게재한 학술지와 앞으로 게재될 학술지의 편집인 모두에게 동의를 구해 이차 출판 형식으로 논문을 게재해야 한다.
과거 80년대에는 일부 학회에서 회원들의 우수 논문을 영어로 다시 써 국제 학술지에 게재하도록 장려하기도 했는데, 교수 업적 평가, 승진 심사 등의 문제와 맞물려 이런 관행이 지금까지도 뿌리뽑히지 않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국내 학술지에는 교수의 연구에 참여한 전공의가 제1저자가 되고 해외 학술지에서는 교수가 제1저자가 되는 등 저자가 바뀌는 경우도 있고, 증례를 조금 추가하고 영문 초록을 다르게 꾸며 마치 다른 논문인 것처럼 고의적으로 위장하는 예도 있다.
그러나 한국어로 된 논문을 한국 내에서만 돌려보던 과거와 달리 1997년부터 코리아메드(KoreaMed)라는 국내 의학 학술지 검색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국내 논문의 영문 초록을 전 세계에서 검색할 수 있게 되면서 이중게재 사례가 과거보다 쉽게 발견되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는 논문 이중게재 문제가 학자 개인의 명예를 실추시킬 뿐 아니라 인사나 승진에도 지장을 주는 심각한 문제로 불거지고 있다.
최근 서울의대에서는 교수 임용 후보자의 논문 이중게재 사실이 발견되면서 신규 임용에서 탈락한 이례적인 사건이 있었으며, 대한소아과학회에서는 이중게재 사례를 적발해 해당 저자의 학회지 논문 게재를 5년간 금지했다.
대한의학회 사무국 장현도 차장은 "올해 10개 학회지에서 이중게재로 판명이 난 논문만 20여 편"이라고 밝혔다.
대한의학학술지편집위원회는 6일 출판윤리위원회를 구성해 출판윤리 관련 분쟁 심사를 전담키로 했다.
출판윤리위원회 함창곡 위원장(한양의대 영상의학과 교수)은 "우선 이중 게재에 대한 판단기준을 마련하는 데 주력하고 있으며, 각 학술지 편집위원장을 대상으로 한 세미나도 기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함 위원장은 "갈수록 국제적 표준에 대한 요구가 엄격해 지고 있어 이중 게재 문제는 더는 미룰 수 없는 시기가 됐다"며 "국내 학자들에게 출판 윤리를 교육하고 각 학술지가 자정 능력을 키우도록 돕는 등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다"고 말했다.
<의학전문기자 . 가정의학전문의> emahn@yna.co.kr (끝)
[연합뉴스] 2006년 07월 12일(수) 오후 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