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0년 찬바람이 부는 10월의 어느 날 오후
정원의 나무에서 떨어져 날리는 낙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데 귀엽고 호기심 많은 말괄량이 손녀 니나가 내게 질문을 해대기 시작했다.
아이는 거실에 있는 큐브센서를 가리키며 옛날에 내가 저런 큐브센서가 없는 집에서 살았었는지 물었다. 큐브센서는 공기의 질이나 습도, 온도, 소음, 빛, 대기압, 등을 측정하고 우리의 개인적 정보를 토대로 해서 우리가 집에서 최적의 웰빙을 누릴 수 있도록 조절해 주는 단순하게 생긴 작은 장치다. 내가 그랬다고 대답하자 아이는 놀라 동그랗게 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할아버지가 어렸을 때 어떻게 살았는지 말해달라고 졸랐다. 아이는 옛날에 대해 궁금증이 많았다. 뜨거운 여름날 밤 3층 아파트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더웠지만 에어컨은 없었고 어둡기도 해서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니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아직 궁금한 게 많아 보였다. 나는 또 뭐가 궁금한 지 물었다. 아이는 2학년 동급생이 어떤 단어를 말하는 것을 들었지만 그 뜻이 뭔지 모르겠는데, 친구 라이아나는 그것이 가정에서 스마트큐브를 사용하지 않던 시절에 있던 것이라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 할아버지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내가 아이에게 그 요상한 단어가 무엇인지 물어보자, 아이가 대답했다. 병원이라고 했어요.
나는 크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내 손녀가 병원을 모르는구나. 정말 귀엽고 행복한 아이다.
아이가 병원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이 귀여운 꼬마 숙녀에게 할아버지가 옛날에 있었던 병원과 의사 간호사 그리고 알약에 대해 이야기 해 줄 테니 가까이 오라고 말했다. 2010년대의 보건의료가 어땠는지 말해 줄 것이다- 의학기술이 아직 태동하기 전의 야만적인 시기의 이야기다.
40년도 더 넘은 옛날, 환자들은 병원이라 부르는 거대하고 불쾌해 보이는 건물에 가서 케어를 받거나 혈압과 같은 건강수치를 측정했다. 예를 들어, 심장이나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보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병에 걸리면 가정이나 다른 곳에서 케어받지 않고 특정한 건물에 가야했다. 그리고 또 그곳의 진료실에서 의사를 만나야 했다. 어떤 경우에는 다른 사람이 검사하는 동안 몇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니나야, 기억하니? 네가 귀를 다쳤을 때 엄마가 의사에게 전화하여 화면에 의사가 나타나면 엄마는 의사에게 네 귀를 보여주었지. 의사는 엄마에게 열이 있는지 묻고, 그리고 어떤 장비를 어떻게 사용해 귀를 검사하라고 말했지? 이 모든 것이 네 방에서 일어났고, 도롱뇽처럼 깜찍한 네 친구 그레그도 옆에 있었지? 옛날에는 그렇게 하기 쉽지 않았단다.
엄마는 이렇게 화상으로 의사와 이야기 하는 방법을 원격의료라 했는데 맞지? 할아버지가 어렸을 적에는 이런 일이 신기했고 많은 사람들은 이를 믿지 않았단다. 사람들은 집을 나와 다른 장소로 가서 케어를 받아야 했다. 그리고 의사를 지금처럼 어디에서나 쉽게 만날 수도 없어서 먼 길을 가야할 때도 많았다. 어떤 경우에는 진짜 사람이 운전하는 앰뷸런스라는 실제 자동차를 타고 가기도 했다. 무인자동차나 의료장비 운반용 드론이 없었단다.
너도 잘 알겠지만, 지금은 컴퓨터들 사이에 눈 깜짝할 사이에 모든 건강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다. 그렇지만 2010년대엔 모든 장비가 서로 연결되지 않아서 의사가 환자에 대해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다른 의사나 간호사가 이미 가지고 있는 데이터와 정보를 환자에게 다시 물어보아야 했단다.
그리고 의사나 간호사는 정보를 손으로 기록하거나 키보드를 두드려 입력해야 했다. 그래서 환자를 보거나 대화를 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어떤 의무기록은 종이에 작성되었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겠니? 그래, 사람들은 손으로 종이에 기록했단다. 네가 연필로 나비를 그리는 것과 비슷하지, 그리고 그 기록을 저장하지 않고 나중에 분석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단다.
예야 할아버지 팔의 디지털 문신을 보렴!
이렇게 작게 반짝이는 금속 막이 아니라, 의사들이 이 거실만큼이나 크고 비싼 장비를 이용했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겠니? 심장의 전기활동(EKG)이나 혈압을 측정하려면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다- 의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의료장비는 100년 전의 컴퓨터처럼 부피가 크고 무시무시했고, 환자들은 매우 복잡한 검사를 받으려 기계가 있는 곳으로 가야했다. 예를 들어 쉽게 볼 수 없는 신체부위를 촬영하는 CT나 MRI와 같은 장치다. 하지만 방사선이라는 문제도 있었는데, 그것은 보이지 않지만 해로운 에너지파가 환자의 신체에 닿는 것이다.
얘야, 네가 모르는 게 있으면 태블릿 컴퓨터에 물어보고 답을 얻을 수 있지? 그렇다. 전에 얘기했듯이, 지금은 인공지능이라는 기술이 있어 이것이 너에 대해 차츰 많이 알아 가며-초등학교 1학년 때 글자를 배우는 것과 비슷하다-, 네가 부딪치는 문제에 해답을 줄 수 있다. 불과 몇 초만에 해답을 찾을 수 있지. 이제, 옛날 의사들이 엄청난 데이터베이스(Pubmed와 같은 것이다)를 검색해 숨겨진 어느 연구에 포함되어 있을 정보를 찾아야 한다고 상상해 보겠니? 자신이 스스로 데이터베이스를 가공해야 하고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면? 관련된 데이터를 읽어 올바른 해답을 찾으려면 며칠에서 몇 주가 걸릴 수밖에 없겠지?
또 언젠가 네 엄마와 내가 너를 데리고 약국에 간 적이 있지? 약국에서 의사가 처방해 준 약을 3D 프린트로 찍어내는 것을 보았을 게다. 얘야, 들어보렴. 2010년대에는 제약회사가 약을 만들었는데, 그 회사는 수 십 년 동안 같은 약을 만들었고 수백만 개를 똑 같은 용량으로 만들었다. 모든 사람이 같은 약을 썼고, 개인별로 다르게 만들어 진 약은 없었다. 그렇게 너나 그레그가 같은 약을 받은 것이다. 네게는 알레르기가 있고 친구 그레그에게는 없는데도 그래야 했다. 3D 프린터로 찍어내는 약이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을 때만 해도 그렇게 만드는 약은 한 가지 뿐이었다.
우리 몸의 가장 작은 단위인 DNA와 유전체 배열(게놈 시퀀싱)에 대해 네게 말해 준 적이 있을 것이다. 지금은 이런 기술로 자기 몸에서 숨겨진 취약점을 찾아 이해하고 그러한 “비밀의” 데이터를 이용해 몸을 치료한다, 그러나 2010년대엔 각 개인에 관해 그렇게 많은 의학적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도 있는 용량으로 약을 처방받았단다.
얘야, 듣고 있니? 내가 옛날 얘기를 할 때면 항상 조는 것 같구나. 이 이야기는 지어낸 네게 소설보다 훨씬 유익하단다.
너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했지?
아이의 눈이 감긴 것을 보고 조용히 일어나 나오면서, 잠을 자게 두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아이에게 말 해 줄 수 없는 2010년대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2010년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자 갖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새로운 치료방법이 어떻게 발명되거나 개량되었는지 그리고 보건의료 기술들이 규제당국의 승인을 받았는지 등이다. 새로운 치료를 기다리다 환자들이 실제로 죽어갈 때도 그랬다. 옛날에는 임상실험이 오래 걸리고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비용이 들었다. 그리고 약물을 환자에게 실험했다-알고리듬이나 생리학적 모델이 아니라 실제 사람을 대상으로 했다.
환자는 병원에서 생활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입원 중에 감염이 일어나는 경우도 잦았다. 케어과정을 전체적으로 지휘하는 알고리듬이 없어 사람들은 불필요하게 반복 케어를 받았다. 2010년대에는 의료과실이 3번째로 흔한 사망원인이었다.
병원은 슈퍼컴퓨터가 아니라 관리자들이 운영했다. 모든 결정이 주관적으로 이루어졌고, 막대한 데이터로 뒷받침되지도 않았다. 의사들도 정량화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일했으며, 그들이 잘하고 있는지 아닌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역학연구는 매우 느리게 진행되어 새로운 감염이나 유행병에 대처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으며 백신개발도 지체되었다. 암은 수 십 년에 걸치는 만성질환이 아니라 삶에 있어 극적인 사건으로 간주되었다. 오랫동안 효과적인 치료방법이 없었다.
의료보험회사는 정량화된 데이터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피보험자의 나이와 성별 정도만 알았고 이를 기준으로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중요한 문제로, 환자가 의사와 동등한 파트너가 아니었기 때문에 환자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처방을 내렸다.
이것이 미래에 가서 돌아 본 현재다.
미래의 내가 나의 손자들에게 2010년대의 “야만의 시기” 보건의료에 대해 말해 준다면 아마 이런 모습일 것이다. 그래, 아이가 잠들지 않는다면 아이스크림을 가져다 줄 것이다.
21세기 초의 보건의료에 대해 나의 아이와 손자들에게 말한다면 내이야기 중 많은 것이 현실과는 너무 멀기 때문에 놀라울 것이다. 지금은 아직도 환자들이 의료인과 동등한 파트너로 대우받지 못하며, 세계 많은 지역에서는 혁신적 치료방법이 아직 그림의 떡이다. 그리고 예방은 아직 중요도 3위 내에도 들지 못하며. 사람들은 자신의 건강에 대해 좀 더 잘 알기 위한 센서를 저렴하게 이용하지 못한다. 의사들은 자신의 지식을 업데이트하기 위해 수 백 만 건의 문헌의 바다 속을 헤매면서 수 십 건의 문헌을 읽어야 한다.
이제 글을 맺는다. 의료의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돌아본 지금은 여전히 보건의료 야만의 시대이며 해야 할 일이 산더미다.- 파괴적 기술에 대처, 환자의 역량을 높이기, 보건의료정보의 디지털화, 치료에서 예방중심으로 전환, 등- 이와 같은 환상들 중 몇 가지라도 이루어야만 지금부터 몇 십 년이 지난 후 내 손자와 이야기 할 때 말이 조금 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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